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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 자크-달크로즈

    달크로즈 교수법과 3대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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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크로즈(Emile Jaques-Dalcroze) 는 1865년 7월 6일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태어났고
그가 10세가 되는 해에 스위스인 이었던 부모를 따라 고국 스위스의 제네바로 이주해서 살게 된다.


그는 어린 시절 페스탈로치(Pestalozzi) 철학을 전수 받은 음악 교사였던 어머니로부터 음악 교육을 받았고, 문화의 도시 비엔나에
살면서 오페라, 발레,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음악적인 배경은 그가 7세가 되던 해에 600곡이 넘는 노래를 작곡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1884년 달크로즈는 파리로 건너가 당대의 유명한 작곡가 들리브(Delibes), 포레(Faure)와 공부를 하였고 특히, 스위스의 이론가
마티스 리시(Mathis Lussy)와의 정통적인 리듬 수업은 그가 훗날 창안한 유리드믹스 수업의 기초를 마련해주었다.

또한 그는 연극에의 관심에 의해 The Come’die Francaise의 탈보(Talbot)에게 연극 레슨을 받기도 하였다.

1886년에는 알제이(Algiers)에서 음악 감독으로 일하기도 하였는데 이 때 그는 아랍의 민속 음악과 그 음악들에서 사용되는 불규칙
하고 원시적인 리듬에 매료되었고 이러한 리듬 기법들은 훗날 그의 유리드믹스 수업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1887년부터는 비엔나 콘서바토리의 학생이 되어 브루크너(Bruckner)와 작곡 공부를 한 그는 졸업 후 제네바로 돌아가 배우, 가수,
지휘자, 시인, 작곡가, 피아니스트, 민속 음악학자 등으로 활동하였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달크로즈는 28세(1892년)에 스위스의 제네바 콘서바토리 (Geneva Conservatory)의 교수로 임용 되었
고 그곳에서 화성학과 솔페즈를 가르치게 되고 이것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 주는 계기가 된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다음의 4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테크닉적으로 훌륭하게 연주를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악기를 통해 전달하는 음악적 표현에는 미숙한 것
둘째, 학생들이 화성학 시간에 화성을 수학 공식 다루듯이 외우고 그 소리는 듣지 못하는 것
셋째,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간단한 멜로디조차 만들지 못 하는 것
넷째, 리듬감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연주 시 리듬 표현이 서투른 것

달크로즈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유리드믹스, 솔페즈, 즉흥연주 이렇게 세 가지 분야를 연계시켜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의 독특한 교수법을 창안해 냈고 1905년 Solothurn Music Festival에서의 강연을 통해 처음으로 그의 교수법의 가치가 대외적으로
알려졌다.

그 후 그는 그의 교수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유럽 전역을 다니며 강연회를 가졌고 1911년에는 독일의 드레스덴(Dresden)근교, 헬레
라우(Hellerau)에 학교를 세워 세계 각지로부터 그의 교수법을 배우러 온 사람들을 교육하였다. 헬레라우에서 그에게 수업을 받은
학생은 다음에 소개되는 다양한 전공의 당대의 유명한 예술가들도 포함한다. (Ernest Bloch, Paul Claudel, Serge Diaghilev,
Granville Barker, Vaslav Nijinsky, Marie Rambert, George Bernard Shaw)

한편, 1913년 달크로즈가 감독하고 유리드믹스로 훈련된 음악가와 무용가들이 헬레라우에서 공연한 글룩(Gluck)의 오페라 “오르페
오(Orpheus)”는 달크로즈 교수법을 다시 한번 전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1914년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으로 헬레라우을 중심으로 전성기를 맞이하며 활동 하던 달크로즈는 제네바로 돌아갔고 1915
년 달크로즈 인스티튜트(The Institut Jaques-Dalcroze)를 설립한다.

양 대전을 거치면서 두 번이나 스위스가 고립되어 대외적으로 달크로즈 교수법을 알릴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거쳤음에도 불구하
고 달크로즈와 그의 교수법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달크로즈 교수법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그의 70세 생일에는
46개 국적으로 포함된 10500명의 그의 전수자들의 사인이 수록된 책을 선물 받기도 했다.
그의 교수법은 음악,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교육에 쓰여지고 또한 신체장애자, 혹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어린이나 성인의
정신 치료에도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진다.

또한 그의 교수법은 20세기 음악 교육의 새 지평을 열어 주는 아주 혁신적인 교육법으로 인식 되었고 코다이, 오르프 등의 음악 교
육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왕성한 연구 활동을 벌이던 그는 1950년 8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 했다.

그의 대표적인 책으로는 Le Rhythme, la musique et l’education(1920): 1898년부터 1919년 까지 쓰여진 기사를 중심으로 엮은 책,
Eurhythmics, Art and Education(1930): 1920년부터 1929년 까지 쓰여진 기사를 중심으로 엮은 책이 있고 유리드믹스 클래스와 솔페
즈 학습을 위해 1000곡 이상의 노래를 만들었다.

오르프나 코다이 교수법에 비하여 달크로즈 교수법은 우리나라의 교사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유치원의 교육 자료들
을 살펴보면 달크로즈 교수법에 기초한 많은 활동들이 그동안 행해지고 있었음을 발견 할 수 있다. 하지만 청음 능력을 키우고 음악적인 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신체 표현이라기보다는 단순 반복적인 율동을 강조함으로서 학생들의 청음 능력 발달과는 상관없이 무용 교육과도 같은 수업 내용이 많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20세기 초 미국에 갓 소개 되었을 때도 일어났는데 음악 교사들이 달크로즈 수업을 무용 교육으로 착각 하여 음악 수업에서의 효용 가치를 깨닫지 못하게 되고 결국은 교사들이 외면함으로써 달크로즈 교수법이 사장될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스위스의 달크로즈 연구소(The Institut Jaques-Dalcroze)를 중심으로 달크로즈 음악 철학은 올바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몇몇 음악 교육자들에 의해 1960년대 말부터 달크로즈의 음악 교육 철학이 재조명 작업이 일어나면서 오르프, 코다이 교수법과 더불어 음악 교수법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달크로즈 교수법만 고수하기보다는 다른 교육가들의 방식도 수용하여 수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달크로즈 워크숍에 코다이 전문가, 오르프 전문가들이 초청되어 서로의 좋은 교육 내용을 나누기도 한다.

달크로즈가 처음에 유리드믹스를 도입한 대상은 음악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었다. 흔히 달크로즈 교수법은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 교육의 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달크로즈 교수법은 유아에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음악성을 계발시키는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달크로즈 교수법의 적용 대상이 확대되어 많은 사람들이 달크로즈 교수법이 가지는 놀라운 효과를 경험하게 되기를 바란다.
글쓴이 : 유승지